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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인슈페너를 닮은 너에게
    靑食創作/음식으로 사랑을 말하다 2020. 6. 1. 16:53

    둥둥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너는 뭐라고 할 거야?”


     희는 내 다이어리에 적힌 책의 한 구절을 보곤 물었다. 글쎄. 나는 짧게 대답했다. 재미없어, 네가 웃었다. 희는 카페에서 틀어준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리듬을 탔다. 타닥, 타다닥.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박자에 맞춰 제 악기를 연주한다. 네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도 커피잔을 타고 춤을 췄다. 희는 해가 나는 날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비가 오는 날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건 희에게 일종의 습관이었다. 나와 만나온 3년 동안 예외인 날은 하루도 없었다.


     “아메리카노는 쓰지 않아?”
     “맛있기만 한데, 뭐. 너는 맨날 마끼아또만 먹으면서.”
     “단 게 좋아.”


     그래서 난 네가 ‘마끼아또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잠깐 고민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끼아또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고 하기에는… 카페에 오기 직전까지 투닥거렸으니까. 별거 없는 이유였다. 희가 설거지 당번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내가 짜증을 냈다. 언제나 변명은 ‘지금 하려고 했어’. 마음이 급한 나에 비해, 희는 항상 여유로웠다. 그것 때문에 다투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그 특별함을 사랑한다.

     

     




     언젠가 너는 나에게 아인슈페너를 건넸다. 난생 처음 보는 커피였다. 아메리카노라면 질색을 하는 나에게 어떻게든 한 번은 먹여보겠다며 주문했단다. 아래는 아메리카노가, 위에는 두툼한 크림이 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마셔봐! 희는 신이 나서 말했다. 하…. 나는 옆에 놓인 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아, 그거 아니야!”

     

     희가 깜짝 놀라 잽싸게 내 손을 잡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크림과 아메리카노가 걸쭉하게 섞여 딱히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희와 나는 3초 정도 눈을 마주치고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다. 어색한 정적을 깨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이거 아니야? 꾹 다문 입술 사이로, 희의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곤 이내 소리 내어 웃었다. 으허하! 네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이상하고 신기하다. 그게 또 좋아서, 나도 희를 따라 웃었다.

     

     “넌 진짜 바보야.”
     “지금 이렇게 맛없게 생긴 걸 먹이려고 한 거야?”

     “아니 원래 이런 게 아니라니까.”

     

     결국 그 아인슈페너는 가위바위보에 진 희가 마셨다. 그렇게 맛없지는 않다고 했다.

     

     

     


     

     이번엔 잘 먹어봐. 희는 턱끝으로 내 앞에 놓인 잔을 가리켰다. 오늘은 그때 실패한 아인슈페너에 다시 도전하는 날이다. 약간의 두려움으로… 아직 마시지는 못했지만. 잔에 입을 대고 천천히 마셔봐. 희는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잔을 가져갔다. 한 모금, 희의 입으로 아인슈페너가 밀려 들어갔다. 그리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입술 끝에는 먹다 만 하얀 크림이 묻어 있었다. 그게 또 바보 같아서 나도 모르게 실실 웃었다.

     

     “마시기 전에 크림 먼저 먹어봐.”

     

     희의 말에 스푼으로 크림을 조금 떠먹었다. 입 안 가득 기분 좋은 달콤함이 퍼진다. 그래도 아메리카노는 쓸 텐데.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네가 괜찮다는 눈으로 얼른 마셔보라 손짓한다. 희가 했던 것처럼 잔에 살짝 입을 대고 조금씩 잔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크림의 단 맛이, 그 다음에는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그러나 쓴 맛은 오래가지 않았다. 크림과 아메리카노가 조화롭게 섞여 꽤 맛있었다. 마치 검은 정장 차림의 아메리카노와 하얀 드레스를 입은 크림이 혀 위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내 앞에서 리듬을 타고 있는 너처럼.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인슈페너하네.”

     

     응? 뭐라고? 물어오는 희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나는 너를 아인슈페너한다.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지내면서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제는 너와의 연애에 익숙해져서 설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소중해서, 설렘보다 네가 있는 익숙한 일상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워서. 달달했던 날, 쓰디썼던 날이 한데 어우러져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으니, 나는 감히 너를 아인슈페너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응? 응? 아, 궁금해! 왜 안 알려줘?”

     

     물론 절대 다시 한 번 말해줄 생각은 없어, 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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