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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입술의 따뜻한 커피
    靑食創作/음식으로 사랑을 말하다 2020. 12. 10. 22:38

     

    네가 밟고 걷는 땅이 되고 싶던 난

    잠시라도 네 입술

    따뜻하게 데워준

    커피가 되어주고 싶었었던 난

    아직도 널 울리고 있을거야,

    아마도 난

    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M은 동그란 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햇살이, 새하얗고 동그란 탁자를 내리쬐는 것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5분, 아니 10분 즈음 지났을까, M을 바라보던 K가 절대 떨어질 것 같지 않던 굳은, 얇은 입술을 뗀다.

     

    “울고 그러지 마. 이미 지난 일이야.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K는 말끝을 흐렸다. M은 K 앞에 놓인, 새하얗고 동그란 탁자 위에 있는, 이제는 식어버린 라떼를 응시했다.

    ‘커피는 따뜻해야 해. 그래서 식기 전에 빨리 마시는 거야.’ 푹푹 찌는 여름에조차, 따뜻한 커피를 고집하던 그에게, 앉은 자리에서, 30분도 채 가기 전에 그 커피를 다 마셔버리는 그에게 M이 이유를 물었을 때, 따뜻한 커피가 식는 것이 싫다며 대답하던 그였다.

     

    그 덕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M은, 쌉쌀하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디저트와 그중에서도 퐁당 오 쇼콜라같이 달콤함의 치사량에 근접한 그런, 무언가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를 감상하듯, 천천히 들이키는 것을 좋아하던 M은, 그럴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K와 함께 카페에 온 날이면, 이가 시리게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쭉쭉 들이켜야 했으니까.

     

    ‘이제는 식어버린 라떼처럼, 마음도 그렇게 식어버린 것일 테지.’ 허공을 바라보는 K의 눈으로 시선을 옮기며, M은 생각했다.

     

     

    K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M은 이미 지나친 어제의 저녁 식사를 떠올렸다. 따뜻한 칼국수를 좋아하는 K와 차가운 냉면을 좋아하는 M이, 저녁을 먹는 중에, K는 대뜸, M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떼었다.

     

    “네가 편안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 알잖아, 난 네 부모님 마음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루가 멀도록 네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이야. 수천 번도 더 생각했어, 결론은 내가 떠나야 네가 행복해지겠다는 거야. 네가 만날 다음 사람은 자상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였으면 좋겠다. 나와의 아픈 연습을 딛고 일어서서, 나 같은 사람만 피해 가면 돼. 너는 물론 그럴거야, 그래서 나는 그래도 행복해.”

     

    “거짓말하지 마! 꿈에서라도 싫어. 너 나를 알잖아, 널 사랑하면서 나를 모두 버렸는데, 너와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한 노력이 얼만데, 너가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우는 게 싫다며, 그러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은 거야?”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면서, 그 따뜻함은 어디로 다 소화되어버린 것인지. 따뜻한 라멘, 따뜻한 짬뽕, 따뜻한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너는, 그 따스함을 어디에 다 흘려버린 것인지. M은 차갑게 말을 이어가는 K의 이야기에서 점점 멀어져, 동그랗고 새하얀 탁자 위의, 녹아버린 얼음으로 색이 연하게 변해버린, 애꿎은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휘휘 저었다. 달그락 달그락, 얼음과 컵이 부딪쳐 미세한 소음을 냈다.

     

    K와의 다툼도, 얼음과 컵이 부딪치듯 달그락 달그락, 미세하게 잡음을 냈다. 눈물이 많던 K는, 눈물이 많던 M과의 다툼 끝에 항상 울었다. M은 꾹 참았다, M이 눈물을 보이는 것을 K가 싫어했으니까. ‘사랑하는 마음 말고도, 둘의 관계에는 뭐가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 것인지. 자상하고 편하고 따뜻한 남자라니, 네가 마신 따뜻한 라떼는 어디 하늘로 증발해버린 건가.’ M은 머릿속을 맴도는 목소리들을 정리하고 K의 눈을 바라보았다.

     

     

    “울지마, 이미 지난 일이야. 삶의 반직선 위의 점이라 생각하자, 시간이 흘러, 추억에 잠겨 뒤돌아봤을 때, 점으로 남아있을 거야. 너와 나는 계속 반직선 위를 걸어갈 거니까.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고, 이건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자.”

     

    “버틸 수 없을 만큼 힘의 들겠지.”

     

    “그래, 내게도 그래. 그렇지만, 나는, 잠시라도 네 입술을 따뜻하게 데워준 커피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식어버린 커피, 돌이킬 수 없는 거 알잖아. 어느 때보다도 긴 시간이겠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것조차도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자.”

     

    M은 동그란 창문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햇살이 동그랗고 새하얀 탁자에 내리쬐는 것을 다시금 응시했다. ‘식은 커피는 데우면 되는 건데, 너는 식은 커피가 그냥 싫은 것이겠지. 식은 커피처럼, 네 마음도 식은 것이겠지.’ 머릿속을 맴돌던 목소리들이 목구멍을 간지럽게 했고, M은, 침묵을 택했다.

     

     

    사진 출처 : Unsplash

     

     

     

                                                                                                                          Editor 아도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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