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제는 묻어두고 지내는, 그때 그 시절의 ‘추석’
    추석과 음식 2020. 10. 18. 22:27

    출처 https://m.cj.co.kr/kr/k-food-life/cj-the-kitchen/recipe/0000000973

     

    송편’, 추석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음식.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몇 년 전부터 가슴에 묻어두고 지내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친가는 전남 나주, 그곳에는 명절 때마다 항상 나를 맞아 주시던, 친할머니가 계셨다. 추석 때는 미리 송편 만들 재료들을 다 준비해 놓으셔서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친척동생(큰아버지의 첫째 딸, 아버지보다 결혼을 늦게하셔서, 우리남매가 나이가 더 많다.) 이렇게 셋이서 송편을 만들었다. 같은 항렬 중에서, 나보다 형 누나들이 많긴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우리 셋은 만나서 열심히 송편을 만들었다. 어린아이였던지라 작디 작은 손으로 송편을 만든 결과, 결과는..... 참담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만든 송편을 먹지 않고, 어머니가 만드신 모양이 예쁜 송편만을 골라먹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자식이 태어난다.’라는데,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매년 추석때 마다 시작된 송편만들기시간은 나에게 행복함을 가져다 주었다. 어머니, 큰어머니, 그리고 나와 동생들, 그 자체로 화목했다. 그런데, 이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큰아버지의 첫째 딸, 내 친척동생이 둘째 딸(당시 3살 즈음)과 함께 밖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숨바꼭질 도중 숨을 곳을 찾다가 그만 주차된 차 밑에 숨어버렸고, 그 차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시동을 걸고 앞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 친가는 적어도 반년간 침울해져 있었다. 결혼을 늦게 하신 큰아버지 입장에서는, 늦게 얻은 자식 중 한명이었기에 더욱 그럴만 했다. 친가쪽 어르신들은 모두 그 하늘로 가버린 그 아이를 원래부터 없었던 아이로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때 당시 나는 어릴 때라 쉬쉬하는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던가, 그 사건 이후로 덮어놓고 지내자, 그 아이 얼굴이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생각이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어릴적이라서 그랬던건가. 아니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쪽이 나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친가는 다시 화색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떠나간 송편만들기의 한 자리는 그녀의 동생, 큰아버지의 둘째 딸이 채워주었다. 여기서 한 가지 슬픈, 아니 혹은 어쩌면 다행인 사실은 둘째 딸은 자신에게 언니가 있었던 사실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뭐 지금까지 건강히 잘 자라준 것을 보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14,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름 잘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공부만 빼면 하하. 큰아버지 내외는 그 사건 이후 하나 남은 자식이라 그런지, 정말 해달란 것 다해주고 부족함 없이 키우셨다. 가끔 가다 내가 그 아이를 부러워할 정도니.... 뭐 나름 나랑 나이가 6살 정도 차이가 났지만, 송편만드는 데 그게 중요하던가.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송편을 만들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창작나갔다. 별모양, 달모양 등등.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 셋 다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해준 것만 골라먹었다. 남은 건 뭐, 아마 그 당시 키우던 백구의 뱃속으로 가지 않았을까.... 미안하다 백구야 크흡.....

     

    그렇게 몇 년간을 다시 화목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할머니의 건강이 문제였다. 할아버지는 진작 내가 태어나셨을 무렵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33년생이셨다.(여담이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모두 몸소 경험하신 세대라 친가에 갈 때 풀어주시는 썰이 은근히 재미있다) 할머니가 노화로 여기 저기 아프시자, 나주 본가는 자연스레 비워지게 되었고, 할머니는 병원을 오가셨다. (물론 지금은 완치하셔서, 건강하게 잘계신다) 그렇다 보니, 우리도 그 시간동안 자랄만큼 자랐고, 송편을 다시 만들지는 않게 되었다.

     

    송편, 이제는 뭐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외가의 경우, 13녀이기에, 외할머니가 한명뿐인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시키기 싫어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외가에서 직접 송편을 먹어본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친가에서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해가 지기 전에는 애들끼리 같이 송편을 만들고, 저녁이 되어서는 가족끼리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그 다음날에는 제사상에 올라온 음식을 또 맛있게 먹고, 집에 갈 때는 두손 바리바리 맛있는 챙겨갈 때의 기분이란.....참 불과 몇 년 만에 이렇게 바뀌어버린 것이 신기하면서도 아쉽다. 그래도 추석이나 명절 때, 어머니나 큰어머니분들이 고생을 크게 안하시는 것보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차타고 내려갈 때 엄마손을 보면 퉁퉁 불어있었으니.... 그때 그시절 추석이제는 추억에 묻고, 지금 우리가족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에 만족해야겠다.

     

     

     

     

                                                                                                                                  Editor 도희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