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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투버 추천] 중국의 삼시세끼, '전서소가'의 운남 요리
    음식에 대하여/코로나 19: 집 콕 미 식 2020. 5. 15. 21:07

     

     

    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약 2년 전까지, 우리 가족은 매년 2번의 명절을 친조부님 집에서 보내곤 했다. 차로 가는데만 족히 한나절은 걸리던 작은 섬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노라면 제주도니 괌이니 멋진 여행을 하고 반에 초콜릿을 돌리던 친구들이 그저 부러웠더랬다. 하지만 그때에 따뜻한 남해 바다 옆에서 고기 그물을 손질하시던 할아버지, 밭일하는 할머니 옆에서 호미로 장난치다 혼난 일, 길고양이를 꼬시러 우유를 사고 사촌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쏘다니던 기억은 가끔씩이라도 떠올라 내 맘을 달래주는 꽤 귀중한 추억이 되어주었다.

     

    전서소가 ( 滇西小哥 Dianxi Xiaoge ), '뎬시샤오거' 로 불리는 이 채널은 운남의 음식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함께 녹아있다. 주인공 아펀은 그의 영상은 종일 식재료를 가꾸고 채집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자칫 단조로울것 같은 일상이지만 따뜻한 운남의 자연, 지혜로운 문화,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식탁을 채우는 일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온화한 자연

    전서소가의 배경은 중국 운남, 즉 윈난성이다. 운남성은 남서부에 위치하며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사철이 따뜻하다. 그러나 1월 평균기온이 8~17 °C일 정도로 따뜻함에도 고지대에 아한대성 기후가 존재할 만큼 다양한 기후대를 가지고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운남성에는 풍부한 동식물 상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중국 이라고 하면 베이징 같은 북부만 생각 했던 나에게 동네 과수원에서 바나나를 따오고 망고를 고추 양념에 무쳐먹는 모습은 상당히 생소하게 다가왔다. 

     

     

     

     

     

     

     

     

     

    또한 동식물상이 다양한 만큼 식재료 역시 다양한데 바나나 꽃부터 콩의 속껍질, 돼지 위 등 생소한 재료들도 많이 사용된다.

     

    바나나 꽃
    돼지의 허파. 대나무 빨대로 폐포에 양념을 불어 넣는다.
    양념된 삼겹살을 돼지 위에 넣어 말린 뒤 익혀먹는다. 일종의 대왕 소세지(?)
    말린 콩물판 요리! 콩으로 묵을 쒀 얇게 펴서 말린다. 

     

    그리고 여느 따뜻한 지방이 그렇듯, 다채로운 향신료를 사용한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아래는 '잠수 날'이란 운남식 건 양념이다. 찍어먹고 섞어먹고 뿌려먹고.. 우리나라 고춧가루처럼 뎬시샤오거 에 자주 출연하는 단골손님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말린 고추와 파프리카가 들어가기도. 특히 초과와 팔각은 채널의 단골손님이다. 

     

     

     

     

     

     

     

    꽤 충격이었던, 잠수날 과일 절임. 매운 양념과 단 과일의 조합이라니 독특하고 한번 먹어보고 싶은 흥미가 생긴다. 

     

    정말 자주 등장해서 심지어는 과일에도 곁들여진다.

     

     

     

    지혜로운 문화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로써 한국과 운남의 식문화엔 비슷한 점이 많다. 차이점이 있다면 돼지기름을 이용한 볶음요리를 자주 한다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때론 개성있는 요리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가장 기발하다 생각했던 것은 바로 '유저육'이다.

     

     유저육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기름을 활용한 고기이다. 음식이 상하는 이유는 미생물이 번식하기 때문인데 운남 사람들은 고기의 수분을 날리고 공기를 차단함으로써 저장기간을 늘리는 조리법을 개발해 냈다. 이런 방법은 우리에겐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집트에서도 유사한 조리법 (이는 후에 프랑스의 콩테로 발전했다) 이 있었다고 하니 다시금 인류의 지성이 감탄스러웠다. 나는 설렁탕이 굳어서 찰랑찰랑 젤리 상태가 되었을 때 그저 얼른 끓여서 밥 말아먹을 생각만 했는데 말이다. 

     

     

     

    유저육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고기를 손질해 3일간 양념에 절이기

     

    2. 돼지비계를 가마솥에 넣고 물과 함께 끓인다. 물은 증발하고 녹은 기름만 남는다. 

     

    3. 절인 고기를 돼지기름에 넣어 튀기듯 익힌다. 이때 고기 표면의 수분이 날아간다.  

     

    4. 고기를 항아리에 넣고 그 기름을 붓는다. 이 기름은 굳어 고기가 산소와 만나는 것을 막아주는 훌륭한 포장 충전재가 된다. 

     

    5. 완성된 유저육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기름을 녹인 후 사용한다.

     

     

     

     

     

    주인공 아펜과 가족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채널의 중심은 따듯한 가족의 모습에 있다. 주인공 아펀은 운남 지역 출신 백족 여성으로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하다 가족 문제로 인해 고향에 내려와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조부모와 두 동생들과 함께 사는데 가끔 고모부네 농장에서 바나나를 따고 숙모와 함께 떡을 만들기도 하는 등 주변 가족들과 함께하기도 한다. 또 그의 반려견 '따왕'은 영상의 귀여운 별사탕 같은 존재이다. 시베리아 허스키로 굉장히 큰 몸집을 가지고 있지만 애교가 많고 아펜을 무척 잘 따른다. 특히 식사 시간에 가족들 옆에 딱 붙어 앉아 음식을 달라고 조르는데 굉장히 귀엽다. 

     

    따왕의 시그니처 포즈. '한 입 달라' 는 손 올리기
    여름이 되면 더울까봐 목 아래의 턱을 다 밀어내는데 멋진 머리에 빈약한 몸이 대비되어 좀 웃기다. 

     

     

     특히 마지막 부분, 나이 드신 조부모와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장면은 뎬시샤오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훈훈한 가족들과 온기가 가득한 식사에서 그의 어린 동생이 되어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외에도 아펀의 시원한 요리 실력 역시 내가 전서소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가족의 식사량에 맞게 취사병 못지않은 큰손으로 보통 으 뒤집개 대신 전용 조리기구 '삽' (사진)을 사용한다. 고기의 경우엔 거위 한 마리 돼지 한마리 등 통으로 쓰는 것이 많으며 칼의 경우엔 흔히 중식도 라고 부르는 큰 칼을 쓰는데, 대파 뿌리를 퍽! 한 번에 으깰 때는 쾌감마저 든다. 그는 그 칼로 큰 고깃덩이를 숭덩숭덩 자를 뿐만 아니라 마늘을 저미고 포를 뜨는 등 섬세한 작업도 능숙히 해낸다. 

     

    시원시원하고 섬세한 칼놀림

     

     

     

     

     인간은 얼마 전 까지도 수렵-농경 사회로 살아왔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극도로 분업화된 요즘 내 손으로 채집한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경험은 쉬운 게 아니다. 어디서 자란 재료인지, 누가 조리한지도 모르는 음식은 편리하단 이유로 우리의 식사를 대체해 왔고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켰다. 물론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입장에서 배부른 소리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다 자라버린 내가 가끔 어린 날의 추억을 되새기듯 '전서소가'는 본능 속 묵혀있는 기억을 꺼내어 지친 마음을 치유해준다. 리틀 포레스트와 삼시세끼 같은 콘텐츠가 주목받는 것 처럼 전서소가는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준비하던 어렸을 적 향수를 되살려준다. 소꿉놀이의 기분을 떠올리게 해 준다.

     

     

     

     

     

     

     

     

     

     

     

     

    Editor 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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